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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토) 시복감사미사 및 기념행사 안내
    박경민  작성일 2014.09.22  조회 111     

▶ 시복감사미사 및 기념행사
● 일시 : 9월 27일(토) 10:00∼13:00
● 장소 : 사직실내체육관

본당 참석교우 : 오전 7시 30분까지 성당에 모여서 출발합니다.

 

 


 


 


이정식

(요한)
출생년도 1795
남녀 남
출생지 경상도 동래
직업 장교
순교연령 73
순교일 1868.

9.
순교지 경상도 동래
이정식(李廷植) 요한은 경상도 동래 북문 밖에 살던 사람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무과에 급제한 뒤

동래의 장교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활 쏘는 법을 가르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나이 59세 때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한 뒤로는 첩을

내보내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요한은 이후 가족들을 열심히 권면하여 입교시켰으며, 누구보다 수계에 열심이었다. 화려한 의복을 피하고, 항상 검소한 음식을 먹었으며,

애긍에 힘쓰면서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또 작은 방을 만들어 십자고상과 상본을 걸고 묵상과 교리 공부에 열중하였다.


 


이러한 열심 때문에 요한은 입교한 지 얼마 안되어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그는 언제나 자신의 본분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가족들과 함께 기장과 경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울산 수박골로 피신하여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1868년 이정식 요한 회장은 동래 교우들의 문초 과정에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동래 포졸들은 그가 사는 곳을 수소문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그의 거주지를 찾아내 그곳에 있던 교우들을 모두 체포하였다. 그때 요한의 아들 이관복(프란치스코)과 조카 이삼근(베드로)은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스스로 포졸들 앞으로 나와 자수하였다.


 


이내 동래로 압송된 요한 회장은 그곳에서 대자 양재현(마르티노)을 만나 서로 위로하며 신앙을 굳게 지키자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문초를 받게 되자, 요한은 천주교 신자임을 분명히 하고는 많은 교우들을 가르쳤다는 것도 시인하였다. 그러나 교우들이 사는

곳만은 절대로 입밖에 내지 않았다. 또 형벌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하였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요한과 동료들은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47일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고통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신앙을 버리고

석방된 사람은 없었다.


 


동래 관장은 마침내 사형을 결정하였다. 그런 다음 옥에 있는 신자들을 끌어내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將臺)로 압송하였다. 이때 사형을

맡은 군사들이 부자를 한날에 죽이는 것을 꺼려하자, 동래 관장은 동시에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하였다. 요한은 참수형을 당하기에 앞서 삼종 기도를

바치고 십자 성호를 그은 다음에 칼을 받았으니, 그때가 1868년 여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74세였다. 순교 후 그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져 사형장 인근에 안장되었다.


양재현

(마르티노)
출생년도 1827
남녀 남
출생지 경상도
직업 좌수
순교연령 41
순교일 1868.

9.
순교지 경상도 동래
1827년에 태어난 양재현(梁在鉉) 마르티노는 언제부터인가 경상도 동래의 북문 밖에서 살았다. 그는

동래에서 좌수(坐首)라는 직책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정식(요한) 회장을 만나면서 천주교 신앙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후 그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868년의 박해 때 마르티노는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동래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당시 그는 포졸들이 집으로 들이닥치자 태연하게

그들을 맞이한 뒤 관아로 끌려갔다.


 


이윽고 관장 앞으로 나가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자, 마르티노는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는 형벌을 달게 받았다. 또 관장이 배교를

강요하자, “절대로 천주교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오랫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다시 문초를 받고

수군의 병영으로 이송되었다.


 


양재현 마르티노는 수군의 병영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배교를 거부함으로써 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옥에 들어가서는 옥졸의 꾀임에

빠져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 뒤 몰래 그곳을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옥졸은 마르티노가 집으로 돌아가자 관장에게 가서 '죄수가 몰래 도망쳤다'고 거짓으로 보고하였다. 이내 포졸들이 다시 마르티노의 집으로

몰려왔고, 그는 즉 체포되어 동래 관아로 압송되었다. 마르티노의 신앙심은 이때부터 다시 굳건해지게 되었다. 그는 혹독한 형벌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천지의 큰 부모이신 천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후 마르티노는 통영에 있는 수군의 병영으로 이송되어 여러 차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동래 관아로 끌려와 옥중에서

이정식 회장과 동료 교우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서로를 위로하면서 신앙을 굳게 지키기로 약속하였다.


 


동래 관장은 마침내 사형을 결정하였다. 그런 다음 옥에 있는 신자들을 끌어내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將臺)로 압송하였다. 이때 마르티노는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십자 성호를 그은 다음에 칼을 받았으니, 그때가 1868년 여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41세였다. 순교 후 그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져 사형장 인근에 안장되었다. 


 


출처: http://popekorea.catholic.or.kr/schedule/sch-sub02-1.asp

 

 


▶ 부산교구 시복 감사 기도
● 기간 : 8월 17일∼9월 27일 공동기도
▶ 시복기념 전대사 특은(발표 : 5월

24일(토) 도보성지순례 마감 기념미사 중)
● 기간 : 2014년 5월 24일(토)∼2015년 8월 16일(일)
● 전대사 얻기

위한 조건(4가지 조건 모두 충족)
① 지정 방문성지 네 곳 중, 적어도 한 곳 순례
② 성지순례 전후 한 달 내 고해성사

참례
③ 성지순례 후 일주일 내 평일미사(영성체) 참례
④'시복 감사 기도'와 가정성화를 위해'주모경'1번
● 방문성지 :

김범우순교자성지, 오륜대순교자성지 (상설고해소 운영), 울산병영순교성지, 수영장대순교성지
▶ 한국순교자 124위 시복 기념 특별

전시회
● 기간 : 8월 17일∼11월 30일
● 장소 :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 관람 시간 : 10:00 ~

17:00
● 입장료 : 성인 1,500원, 청소년 700원
● 문의 : 051-583-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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