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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의 복자 이정식(요한)과 양재현(마르티노)
    언양성당  작성일 2014.07.11  조회 111     












이정식

(요한)


양재현

(마르티노)


출생년도

1795


성별 남


출생지

경상도 동래


직업

장교


순교연령

73


순교일

1868. 9.


순교지

경상도 동래



출생년도

1827


성별 남


출생지

경상도


직업 좌수


순교연령

41


순교일

1868. 9.


순교지

경상도 동래



이정식(李廷植) 요한은 경상도 동래 북문 밖에 살던

사람이었다
. 그는 젊었을 때 무과에 급제한 뒤

동래의 장교가 되었으며
, 많은 사람들에게 활 쏘는 법을 가르친

적도 있었다
. 그러다가 나이 59세 때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한

뒤로는 첩을 내보내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



요한은 이후 가족들을 열심히 권면하여

입교시켰으며
, 누구보다 수계에

열심이었다
. 화려한 의복을

피하고
, 항상 검소한 음식을

먹었으며
, 애긍에 힘쓰면서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 또 작은 방을 만들어 십자고상과

상본을 걸고 묵상과 교리 공부에 열중하였다
.



이러한 열심 때문에 요한은 입교한 지

얼마 안되어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 그는 언제나 자신의 본분을

다하였다
. 그러던 중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가족들과

함께 기장과 경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울산 수박골로 피신하여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



1868년 이정식 요한 회장은 동래 교우들의

문초 과정에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 그러자 동래 포졸들은 그가 사는 곳을

수소문하기 시작하였고
, 마침내는 그의 거주지를 찾아내 그곳에

있던 교우들을 모두 체포하였다
. 그때 요한의 아들

이관복
(프란치스코)과 조카 이삼근(베드로)은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스스로 포졸들 앞으로 나와 자수하였다
.



이내 동래로 압송된 요한 회장은

그곳에서 대자 양재현
(마르티노)을 만나 서로 위로하며 신앙을 굳게

지키자고 다짐하였다
. 그리고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문초를 받게 되자
, 요한은 천주교 신자임을 분명히 하고는

많은 교우들을 가르쳤다는 것도 시인하였다
. 그러나 교우들이 사는 곳만은 절대로

입밖에 내지 않았다
. 또 형벌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하였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



요한과 동료들은 문초와 형벌을 받은

47일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고통을

당해야만 하였다
.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신앙을

버리고 석방된 사람은 없었다
.



동래 관장은 마침내 사형을

결정하였다
. 그런 다음 옥에 있는 신자들을 끌어내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
(將臺)로 압송하였다. 이때 사형을 맡은 군사들이 부자를

한날에 죽이는 것을 꺼려하자
, 동래 관장은 동시에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하였다
. 요한은 참수형을 당하기에 앞서 삼종

기도를 바치고 십자 성호를 그은 다음에 칼을 받았으니
, 그때가 1868년 여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74세였다. 순교 후 그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져 사형장 인근에 안장되었다
.


1827년에 태어난

양재현
(梁在鉉) 마르티노는 언제부터인가 경상도 동래의

북문 밖에서 살았다
. 그는 동래에서

좌수
(坐首)라는 직책을 갖고

있었는데
, 어느 날 이정식(요한) 회장을 만나면서 천주교 신앙에 대해

알게 되었고
, 이후 그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



1868년의 박해 때 마르티노는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동래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 당시 그는 포졸들이 집으로 들이닥치자

태연하게 그들을 맞이한 뒤 관아로 끌려갔다
.



이윽고 관장 앞으로 나가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자
, 마르티노는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는 형벌을 달게 받았다
. 또 관장이 배교를

강요하자
, “절대로 천주교 신앙을 버릴 수

없다
.”고 하면서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 그런 다음 오랫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다시 문초를 받고 수군의 병영으로 이송되었다
.



양재현 마르티노는 수군의 병영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 배교를 거부함으로써 옥에

수감되었다
. 그러나 옥에 들어가서는 옥졸의 꾀임에

빠져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 뒤 몰래 그곳을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옥졸은 마르티노가 집으로 돌아가자

관장에게 가서
'죄수가 몰래

도망쳤다
'고 거짓으로

보고하였다
. 이내 포졸들이 다시 마르티노의 집으로

몰려왔고
, 그는 즉 체포되어 동래 관아로

압송되었다
. 마르티노의 신앙심은 이때부터 다시

굳건해지게 되었다
. 그는 혹독한 형벌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천지의 큰 부모이신 천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신앙을

증거하였다
.



이후 마르티노는 통영에 있는 수군의

병영으로 이송되어 여러 차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 그런 다음 다시 동래 관아로 끌려와

옥중에서 이정식 회장과 동료 교우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 서로를 위로하면서 신앙을 굳게

지키기로 약속하였다
.



동래 관장은 마침내 사형을

결정하였다
. 그런 다음 옥에 있는 신자들을 끌어내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
(將臺)로 압송하였다. 이때 마르티노는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십자 성호를 그은 다음에 칼을 받았으니
, 그때가 1868년 여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41세였다. 순교 후 그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져 사형장 인근에 안장되었다
.


 


 


 

 


출처: http://popekorea.catholic.or.kr/schedule/sch-sub02-1.asp

 

교구 시복위원회 특별 공지

교구 시복 기념행사

 

▶ 공동기도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과 시복식을 위한 기도'
(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

승인)
● 기간 : 4월 27일(일)∼8월 16일(토) ●

 

▶ 시복기념 전대사 특은(발표 : 5월 24일(토) 도보성지순례 마감 기념미사 중)
● 기간 : 2014년 5월

24일(토)∼2015년 8월 16일(일)
● 전대사 얻기 위한 조건(4가지 조건 모두 충족)
① 지정 방문성지 네 곳 중, 적어도 한

곳 순례
② 성지순례 전후 한 달 내 고해성사 참례
③ 성지순례 후 일주일 내 평일미사(영성체) 참례
④'시복 감사 기도'와

가정성화를 위해'주모경'1번
● 방문성지 : 김범우순교자성지, 오륜대순교자성지
(상설고해소 운영), 울산병영순교성지, 수영장대순교성지

 

▶ 시복기념 특별전시회
● 기간 : 8월∼9월 ● 장소 :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 일시 : 8월 16일(토) 10:00
● 장소 :

서울 광화문
● 대상 : 부산교구 1만 4천명

 

▶ 시복감사미사 및 기념행사
● 일시 : 9월 27일(토) 10:00∼13:00
● 장소 :

사직실내체육관
● 대상 : 교구민 1만 4천명

 

 

 

부산교구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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